도시의 미래는 더 이상 단순한 성장에 있지 않습니다.
어떤 위기가 오더라도 지속적으로 작동하고, 시민의 일상을 지키며, 기회로 전환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춘 도시— 바로 회복력 있는 도시, 리질리언스 시티가 앞으로의 도시정책의 핵심 비전이 되고 있습니다.
오늘은 도시 회복력을 중심에 둔 정책의 방향이 어떻게 설계되어야 하는지, 국내외 도시들이 어떤 전략을 추진하고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의 도시정책이 갖추어야 할 철학과 구조는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기후 위기 대응 중심의 도시 전략
기후 변화는 이제 단기적 재난이 아니라 장기적 도시 시스템의 압박 요소입니다.
폭염, 홍수, 해수면 상승, 가뭄, 도시 열섬 현상 등은 물리적 인프라뿐 아니라 도시의 사회·경제적 기능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도시정책은 단순한 기후 ‘적응’이 아니라 ‘완화(Mitigation)와 회복(Resilience)’을 통합한 구조로 설계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 녹지 축 확대와 그린 인프라(Green Infrastructure)를 통한 열섬 완화
• 저탄소 교통수단 도입과 대중교통 연계
• 탄소 중립 건축물 기준 의무화
• 재생에너지와 에너지 자립률 강화
• 재해에 강한 수변 도시계획의 도입 등
이러한 정책은 단기 복구를 넘어 장기적 도시의 지속성과 직결됩니다.
네덜란드의 로테르담은 기후 회복도시 전략을 통해 도시 내 지붕녹화 비율을 2030년까지 50%로 확대하고, 수변 주거지에 대한 ‘부양형 건축’ 기술을 도입하는 등 기후 리질리언스를 정책의 핵심축으로 삼고 있습니다.
2. 도시 데이터 기반의 적응형 정책 설계
빠르게 변화하는 도시 환경에서 고정된 정책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적시에 반응하고 수정할 수 있는 유연성’입니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데이터 기반 도시 운영입니다.
스마트시티, 디지털 트윈, 도시 IoT 인프라를 통해 실시간 정보를 수집하고, 정책효과를 분석하며, 필요 시 재조정할 수 있는 "적응형 정책(adaptive policy)"이 미래 도시 정책의 기본 구조가 되고 있습니다.
한국의 세종 스마트시티 국가시범도시는 생활데이터 기반 정책 실험실(Living Lab)을 운영해 실시간 교통, 미세먼지, 전력 수요 등을 정책 결정에 반영하고 있습니다.
이는 시민참여 플랫폼과 연계되어 주민 피드백을 정책 조정에 실시간으로 반영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습니다.
3. 분산성과 다양성을 갖춘 도시 시스템
코로나19, 전력 대란, 글로벌 공급망 단절 등은 도시의 ‘집중화 구조’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드러냈습니다.
미래 도시정책은 단일 시스템이 아닌 다중화된, 분산형 구조로 전환되어야 합니다.
예:
• 전력: 지역 분산형 태양광 + 에너지 저장장치
• 식량: 지역 기반 도시농업과 유통망
• 교통: 차량·보행·자전거·공유모빌리티의 혼합 네트워크
• 물류: 중앙집중형 물류센터에서 분산형 마이크로 물류 허브로
이러한 정책은 위기 시 도시 기능을 유지하고 시민의 일상 지속성을 보장할 수 있는 핵심 설계입니다.
덴마크 코펜하겐은 도시 내 자율적 에너지 생산을 위한 ‘에너지 블록’ 개념을 도입해 도심 외곽 마을 단위에서 에너지 자립이 가능하도록 정책화하고 있습니다.
4. 시민 주도형 도시 거버넌스
도시 회복력은 시민 없이는 작동할 수 없습니다.
정책이 일방향이 아니라 "시민과 공동 설계하고 실행"하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이에 따라 전 세계 주요 도시들은 시민참여형 거버넌스 모델을 도시 회복 전략에 통합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는
• 참여예산제도: 회복력 예산 항목에 대해 시민 투표 방식 결정
• 커뮤니티 재난 네트워크 운영
• 디지털 플랫폼을 통한 정책 설계 피드백 시스템
• 취약계층 중심 시민참여위원회 구성 등
서울시는 ‘지역안전계획 시민참여단’을 운영해 각 자치구의 위험요소 조사, 정책 모니터링, 캠페인 등을 시민이 주도하는 방식으로 확장하고 있으며, 독일 프라이부르크는 도시 계획의 초기 단계부터 주민 공청회를 의무화하고 실제 설계에 반영하는 프로세스를 제도화했습니다.
5. 회복력 평가와 도시 인증체계 도입
정책이 잘 설계되었는지, 회복력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정량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체계도 필요합니다.
UNDRR, OECD, World Bank 등 국제기구는 도시 회복력 평가 지표를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국가 및 도시 단위에서 ‘회복력 진단–목표 수립–성과 측정’의 전략적 운영이 가능해졌습니다.
국내에서는 국토연구원과 행정안전부가 공동으로 ‘지자체 회복력 지표’를 개발하고 있으며, 기초지자체를 중심으로 회복력 진단–계획 수립–시민참여 실천까지 단계별 정책을 시범운영 중입니다.
마치며
도시는 끊임없이 진화해야 합니다.
예측할 수 없는 위기의 시대, 우리가 만들어야 할 도시는 ‘무너지지 않는 도시’가 아니라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도시’입니다.
리질리언스는 도시의 ‘기술’이 아니라 ‘철학’이어야 합니다.
회복력은 성과가 아니라 존재 방식 그 자체가 되어야 합니다.
댓글